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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불편한 사람이 있어요. 여러 같이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데, 틈만 나면 가르치려고 들어요.

이말 저말 하는데, 듣고 싶지 않거든요. 나만 그런가 싶어서 다른 사람 표정을 살펴보는데,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정작 그 사람만 모르는 거죠. 나라도 나서서 진지하게 “그러지 말라”라고 말을 좀 해줄까, 싶다가 괜히 서로 불편해질까 봐 참아요.

다음 날 아침에, 운전을 하고 가는데 밑도 끝도 없이 욕이 한 마디 나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이지.” 당황스럽더라고요.

그 사람 생각을 하니까, 나도 모르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게 된 거죠. ‘이건 아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사람의 말투나 태도에서, “너희들, 이거 모르잖아. 난 알아. 그러니까, 내 말 들어. 그래야, 성숙해질 수 있어.”라는 우월감이 느껴요. 그게 참기 힘들거든요.

그 사람이 하는 말, 별게 아니에요. 다 아는 상식을 잘난 척하면서 말하니까 못 들어주겠는 거죠. 듣고 배울 게 있으면 차라리 좋겠네요. 생각하니까 또 화가 나네요.

만약에, 내가 상담자가 돼서, 그 사람을 상담실 안에서 내담자로 만난다면, 어떻게 상담을 해주겠냐고요?

쉽지 않네요. 그 사람은 일단 결핍이 있는 사람일 거예요. 자신 안에 열등감을 숨기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겠죠.

“상담실에서 그 사람을 만난다면”이라는 가정이 있으니까, 신중해야겠네요. 일단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줘야겠죠.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니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제가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티를 안 낸다고 해도, 티가 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더 불안했겠죠. 더 많은 말을 하게 됐을 것 같아요.

같이 있는 시간은 여전히 불편하겠지만, 한결 마음은 편해졌어요. 모든 사람에게 결핍이 있잖아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고요.

아마, 내 안의 결핍 때문에 그 사람이 더 불편하게 느껴졌을지도 몰라요. 요즘은, 나를 돌아보면서 “나는 그 사람이 왜 이렇게 불편할까?” 고민해보고 있어요.

아직 답은 못 찾았지만, 이전보다 여유가 생긴 건 확실해요. 얼마 전에, 함께 모임을 하는 다른  친구가 식사하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묻더라고요. 

그 사람 때문에 힘들지 않냐고. 자기는 그 사람 때문에 모임에 나오기 싫다면서, 난 괜찮냐고 물었어요.

그냥 솔직히 말했어요. 나도 힘든데, 그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냐고. 요즘 나는 그 사람이 왜 이렇게 불편한지, 혼자 생각해보고 있다고.

그 친구가 음식을 쩝쩝 씹으면서 농담처럼 말하더라고요. “나 그 사람 씹는 거 아니다. 음식 씹는 거야.” 저도 웃으면서 말했죠. “꼭꼭 씹어라. 체한다.”

요즘 친구와 제가 그 사람을 챙겨주고 있어요. 마음은 편치 않지만, 교회에서라도 그 사람을 받아주지 않으면, 누가 그 사람을 받아주겠어요.

나도 그 사람도 예수님 때문에 사는 거죠. 예수님 아니면, 만날 일도 없고, 어울릴 일도 없어요. 예수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나도 부족한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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