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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 가장 신경 쓰이던 것들은 주변에 굴러다니는 장난감이었다. 혹시라도 아이가 밟고 넘어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항상 바닥을 살피며, 걸려 넘어질 만한 것들을 치우는 일에 열심이었다. 아이가 아장아장 아빠에게 오는 길이 안전하기를 바랐다.

     상담실 안에서 내담자는 내게 말한다.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싶어요. 예수님께 가까이 가고 싶어요. 예수님 품에 안기고 싶어요.”

     내담자가 예수님께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예수님과 내담자 사이에 잡동사니가 너무 많다. 잡동사니에 발이 걸려, 자꾸 넘어져서 무릎이 상한다. 자칫 잘못하다 발목이라도 꺾이면 주저앉아 운다. 가끔은 날카로운 것들이 발을 찌르기도 한다.

     나는 내담자가 예수님께로 가는 길에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에 온 힘을 다한다. 상담의 목표는 내담자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왜곡된 복음은 장애물이고, 온전한 복음은 지름길이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상처를 온전히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혀를 쯧쯧 차면서, 한가로이 팔짱을 끼고 말할 것이다. “이미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신데, 뭔 소리 하는 거여. 애써 어디로 갈 필요가 없어. 누리면 되는 거여. 뭔 고생을 그렇게 사서 한데.”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나도 알아, 이 사람아.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알면서 그런 소리 하는 거여?”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심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자신 안의 수많은 상처와 왜곡을 부정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신 안에 계신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는 것은 일생의 과정이다. 결코, 쉽지 않다.

     내 아이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때 내가 하던 일과 상담실 안에서 내가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내담자가 그리스도를 향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눈앞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목표다.

     세상에 나 자신과 내담자 단둘만이 존재한다는 착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한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결국, 내가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 스스로 걸을 수 있으면, 장난감을 치워주는 사람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내가 행복하다 말하면 믿을까. 무의미한 상담자라도 감사하다. 쿵쿵 넘어져도, 까르르 웃으며 다시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가는 내담자를 바라보며 나는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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