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왜 말도 하지 않고 갑자기 우리집에 오신다는 거야? 당신은 알고 있었어?”

아내가 말했다.

“어젯밤에 말씀하시더라.”

남편이 말했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어차피 당신이 알면 못 오시게 할 거 아니야?”

“그래도 말을 해줬어야지.”

“말하면? 다음에 오시라고 할 게 뻔한데, 뭐.”

“황당하네. 나도 쌓인 게 있으니까 이러는 거 아닐까?”

“나도 장모님한테 항상 감사한 것만 있는 건 아니야. 착각은 안 했으면 좋겠네.”

“우리 엄마한테 서운한 게 있다고?”

“당신이 우리 엄마를 그렇게 무시하는데 내가 당신 부모님에게 잘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지.”

“당신은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야. 소름끼친다.”

“당신도 나중에 시어머니 될 거 아니야? 그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잘해.”

 

      V는 두 아들을 둔 결혼 11년 차 아내다. 남편은 집집마다 담장이 없어 남의 집을 자기 집 드나들 듯 하는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공부를 잘해서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갔다. 부모님은 소 키우고 농사지은 돈으로 아들을 키웠다.

 

      도시로 한 번 나온 아들은 명절 이외에는 부모님을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 열심히 살았고 결과도 좋았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출퇴근이 편하고 학군이 좋은 신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신혼 초부터 그녀는 시부모님 때문에 힘들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시골에 자주 내려오지 못하는 게 서운했는지 며느리에게 자주 전화했다. 시골에 한 번 내려오라고. 며느리 역시 일을 해서 여유가 없었다. 주말에 남편과 보낼 시간도 빠듯했다. 주말이 되면 거실에 누워서 남편과 영화를 보면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다.

 

      시어머니의 잦은 전화가 부담스러워 부부는 시골에 내려갔다. 시어머니가 남편을 반겨주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싸늘했다. 주말 내내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니 서방이 바쁘니께 너라도 한 번씩 내려와야 하는 거 아니냐? 아니면 날을 정해서 언제 같이 올 것이라고 말을 해주든가. 명절에만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여.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아내는 답답했다. 남편에게 할 말을 왜 자신에게 하는지 황당했다. 남편은 애지중지, 그녀는 찬밥 신세다. 남편은 애써 미안한 표정을 보이며 어쩔 줄 모른다. 눈치는 있다. 주말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당신 엄마가 나 쳐다보는 거 봤어?”

그녀가 말했다. 남편은 침묵했다.

“왜 말이 없어?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가 있어? 내가 진작 내려가자 했잖아. 그때마다 바쁘다고 한 건 당신이고.”

“그만해.”

“당신은 양심도 없어?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나도 몰라. 당신이 알아서 해!”

“답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뭐해.”

“무슨 답이 없어? 당신이 해결할 의지가 없는 거지!”

“그만하라고!”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아내는 두 번 다시 시골에 내려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아내를 두고 혼자 시골에 내려갈 수는 없었다. 아내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는 남편 전화로 옮겨갔다. 남편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다음에 내려간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전화하신 날이면 두 사람 사이가 얼어붙었다.

 

      주말 어느 날, 아내는 평소처럼 속옷차림으로 집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기사 같았다. 안에서 밖으로 소리쳤다. 문 앞에 두고 가라고. 그런데 문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택배기사가 아닌 시어머니였다.

 

      남편이 문을 열어주고, 아내는 급하게 들어가 옷을 입고 나왔다. 시어머니 두 손에 시골에서 가져온 음식이 잔뜩 들려있었다. 남편은 어머니가 서운해하실까봐 황당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주말 내내 어머니가 편히 쉬고 가시도록 최선을 다했다. 아내는 밀려난 기분이었다. 시어머니가 계신 내내 집안일에 정신이 없었다.

 

      전쟁 같은 주말이 지나고 시어머니가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날 밤, 둘은 크게 다퉜다. 아내는 이런 일이 또 한 번 일어나면 이혼하겠다고 말했다. 남편도 죽을 맛이었다. 어머니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평생 그렇게 살아오셨다. 자식이 얼마나 보고 싶으면 찾아 왔겠나 싶었다.

 

      어머니가 아내를 배려해주면 좋겠지만 어머니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 해주라고 아무리 부탁해도 소용없다. 남편은 아내에게 서운하다. 한 번 참으면 되는데 한 번을 참지 않는다. 싫은 티를 낸다. 여자들이 감정에 얼마나 민감한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남편은 난감했다.

 

      아내는 남편의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더 적극적으로 시어머니와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자신과 시어머니 사이에 앙금을 풀어주고 새로운 관계를 위해 그가 노력해주기 바랐다. 아무리 미워도 시어머니는 남편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분이 아닌가! 잘 지내보고 싶었다.

 

***

 

      왜 두 사람은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할까? 아내는 남편에게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를 비난한다. 아내의 의도와 달리 남편은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말을 받아들인다. 아내가 말한다.

 

“어머니가 왜 전화 없이 집에 오신 거야?”

사실을 묻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다르게 들린다.

 

“당신 엄마는 왜 교양 없이 전화도 하지 않고 우리집에 막 찾아오시고 그래?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야?”

아내는 남편에게 상처 줄 의도가 없다. 그러나 상처가 된다.  남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내 말을 오해한 남편은 말한다.

 

“엄마가 아들 집에 오시는 게 뭐 어때서?”

남편의 의도는 분명하다.

 

“당신이 이해주면 안 돼?”

그러나 아내는 남편 말을 듣고 오해한다. 그녀에게는 남편의 말이 전혀 다르게 들린다.

 

“엄마가 아들 집에 오시는 게 당연한 거니까, 평생 그렇게 살아. 시어머니 대접 똑바로 하고. 알겠어?”

남편이 의도한 게 아니다. 아내가 남편 말을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조차 못한다.

 

      핵심은 단순하다. 서로 상처 줄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의도가 없어도 상처 받는다. 공을 던진 사람이 사람을 다치게 할 의도가 없어도, 사람이 공에 맞으면 다친다. 아프고 상처가 된다. 그럼 어떻게 할까? 공 던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에게 맞지 않도록, 다치지 않도록 던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공 던지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공이 정확히 날아가도록.

 

      두 사람이 던지는 공은 잘못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다. 공의 방향이 서로의 존재를 향하고 있다. 서로의 존재를 향해 날아가는 공은 상대방 인격을 향한다. “너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외치는 순간, 갈등이 일어난다. 상대방 반응이 뻔하다. “아니,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공이 날아가는 방향은 서로의 존재가 아닌 서로의 문제 행동에 맞춰져야 한다. “그 행동이 문제야”라고 말한다면, 배우자의 문제 행동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존재를 향하는 대화는 관계를 파괴한다. 억지스럽더라도 단순하게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아내가 말한다.

 

“나, 그런 사람 아니야.”

남편이 말한다.

 

“아니, 당신 그런 사람이야!”

“아니야,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아니, 아니라고!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예를 들어 볼게. 이 상황에서 그랬지? 저 상황에서도 그랬지? 그러니까 당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아니야! 그 상황도 오해고, 저 상황도 오해야. 그러니까 난 그런 사람 아니지?”

“당신은 그런 사람이 맞다고! 인정해! 빨리 인정하라고!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난 그런 사람 아니야! 당신이 잘못 알고 있어!”

 

      원래 말하고 싶던 주제는 사라졌다.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사라지고 서로 비난하고 있다. 서로 찌르고 찔리는 잔혹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존재를 공격하면 답이 없다. 배우자의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배우자의 행동이 불만이라면 행동에 대해서만 말하자. “그런 행동을 하니까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라는 접근은 절대금지다.

 

      존재가 아닌 행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두 사람이 말하는 방법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마치 유학을 떠나서 모국어 대신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부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 주어를 변화시켜보자. 많은 부부는 “당신, 너”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시작부터 공격적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까 당신은 이렇게 해야만 해!”

 

      상대방은 공격에 맞서 방어하는 자세를 취한다. 어떤 말이든 받아친다. 잘못을 인정할 가능성은 제로다. 그러나 주어를 “나”로 바꾸면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내가 느낀 감정, 내가 원하는 것을 전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야. 만일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면  나는 이런 감정을 느낄 것 같아”라고 말한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이 아니다. 공격하지 않으니 방어하지 않는다. 다른 의미로 전달된다.

 

      “나는 어머니가 연락도 없이 오면 당황스러워. 그냥 그렇다고. 당신이 내 마음을 이해줬으면 좋겠어. 만일 당신이 날 이해한다면 난 사랑받는다고 느낄 것 같아.”

 

      그뿐이다. 대화 끝이다. 배우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새로운 언어 방식을 익혀야 한다. 배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그대로 배우자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달하는 방식을 잘 배우고 연습하지 않으면, 대화 중간에 왜곡된 의미가 전해질 것이다.

 

      올바른 전달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자. 표현 방식이 달라지면  배우자의 반응도 달라진다. 언어를 새로 배우는 것은 훈련이고 연습이다. 하루아침에 실력이 쌓이는 것이 아니다. 오래 걸린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고 연습하자.

 

모든 부부는 서로 사랑한다.

진심이 전해지지 않아 상처받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