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정한 상담 방법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아요.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서, A, B, C처럼 순서대로 고쳐지는 게 아니에요. 

 

모든 사람은 서로 달라요.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상담은 단순해져요. 특정 방법론을 앞세워, 내담자를 끌고 가려고 하거든요. 뭔가 어긋나면, 내담자를 탓하기 쉬워요. 

 

“당신, 정말로 변화되고 싶은 게 맞아요?” 

 

상담만 그럴까요? 아니에요. 나는 10년 넘게 목회를 했는데, 교회 안에서도 그래요. 목사가 성도를 대할 때, 리더가 사람을 대할 때 자주 반복되는 일이에요. 

 

‘언제까지 그럴 거야? 이제 벗어날 때도 됐잖아.” 

 

그러게요. 왜 벗어나지 못할까요? 상대방의 잘못일까요? 그렇게 말해버리면, 참 쉽죠. 나는 반대로 생각해요. 

 

‘내가 뭔가 놓친 것이 있다. 그게 뭘까?’ 

 

기도하고, 고민하고, 생각해요. 그래도, 잘 모르겠어요. 그럴 때는, 마음을 비우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해요. 내가 주도하지 않고, 성령님께 자리를 비워드리는 거죠. 

 

상담 방법론이나 치료 기법을 무시하는 건 아니에요. 지식과 이론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고 마음먹어도, 진공상태로 사람을 대할 수는 없을 거예요. 나 자신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사람을 억지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욕구는 버릴 수 있어요. 

 

스물다섯 살, 고등부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했어요. 아무것도 몰라서, 열정만 앞섰어요. 어느 날, 새벽에 고등부 남자아이가 전화를 했더라고요. 울면서 죽고 싶다고 말했어요. 

 

나는 두려웠어요. 

 

그 아이의 목소리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진심으로 들렸거든요. 나는 그 자리에서, 한 시간을 전화를 붙들고 그 아이와 대화했어요.

 

다음 날 아침 일찍, 그 아이를 찾아갔어요. 아이가 밝게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전도사님, 걱정 마세요. 저 이제 안 죽을 거예요.” 

 

나는 궁금했어요. 뭐였을까? 무엇이 어젯밤까지 죽고 싶다고 말한 아이를 다시 웃게 만들었을까?

 

나는 물었어요.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제가 새벽에 전화드렸는데, 화내지 않으셨잖아요.” 

 

나는 말 문이 막혔어요.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죠. 

 

‘그 단순한 이유 하나 때문에,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는 거야…. 지금까지 무슨 일을 겪은 거니…. 포기하지 않고 살아줘서 고맙다.’

 

  그날 새벽, 전화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그 아이도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이런 말까지 하기는 그렇지만, 아마 내가 내뱉은 모든 말이 아무 의미 없었을 거예요. 

 

풋내기 전도사 시절, 그 아이를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세월이 흘렀어도, 나는 여전히 같은 말을 들어요. 

 

“목사님은 적어도 저를 비난하지 않으실 것 같았어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여전히 마음이 먹먹해져요. 

 

상처 입은 한 사람이 당신을 찾아온 이유는, 남다른 통찰을 원해서가 아니에요. 몇 마디 말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어요. 답을 몰라서 당신을 찾아온 게 아니라,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온 거예요.  

 

A, B, C…. 당신이 터득한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지 마세요. 이미 검증되었다고 말하는 다수의 방법론에 현혹되지 마세요.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다 아는 듯이 말하지 마세요. 

 

오직 한 사람. 

 

그 한 사람에게, 오롯이 집중하세요. 

 

당신은 목격자일 뿐, 치유할 수 없어요.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세요. 성령님은 성령님의 일을 하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