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얼마 전에 급성 맹장으로 일주일 동안 입원한 적이 있어요.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겨서 병원으로 출발하면서 전화를 했어요. 남편이 평소와 다른 목소리로 시어머니가 오고 계시니 조금 있다가 오라고 했어요. 서로 만나면 불편하니까.  제가 괜찮다고 하니까 남편이 짜증을 내기에 저도 오기가 나서 바로 가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시어머니 목소리가 들렸어요. 조금 있다가 오라면 이따가 오면 되지 무슨 말이 많냐고. 옆에 계셨던 거예요. 남편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전부 다 해요. 그의 마음속에는 제가 없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상담을 받기로 한 거죠.

남편은 상담 받아보자고 하면 너나 받아보라고 할거예요. 그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하겠죠. 상담이 끝나는 대로 결정하라고 말하려고요. 어머니를 선택할 것인지, 나를 선택할 것인지.”

그녀는 네 살 연하 남편과 결혼했다. 결혼 10개월이 지난 지금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 짧은 결혼 생활 동안에 그녀는 밀려난 기분이었다. 그녀의 고통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 덕분에 남편보다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갓 시작해서 모은 돈이 거의 없었다. 아내가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남편은 자존심 때문인지 어머니가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일정 금액을 입금해주기로 약속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반복적으로 하는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가 약속한 금액에 맞춰 결혼식, 신혼살림을 준비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시어머니는 태연하게 말했다.

주기로 한 돈의 절반만 줄 테니 절약하면서 살면 좋겠다고. 아내는 짜증이 났다. 진작 말해주셨으면 결혼식을 그에 맞춰 계획했을 것이다. 신혼살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스란히 갚아야 할 빚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당신은 알고 있었어?”

그녀가 말했다.

“당연히 알고 있었지.”

그가 말했다.

“왜 미리 말 안했어?”

“엄마가 내 생각을 묻기에 나는 괜찮으니까 당신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했지.”

“나 빼놓고 둘이 말을 맞춘 거네. 내 반응이 중요했어? 둘이 미리 결정한 거잖아!”

“엄마가 오랫동안 모은 돈이야. 대출받아서 금액을 맞추려고 한 건데 대출을 못 받은 거야.”

“그럼, 진작 말씀을 하셨어야지. 다 당신하고 나하고 갚아야 할 빚이야.”

“갚으면 되잖아. 나는 돈 몇 푼 때문에 당신이 엄마 앞에서 인상을 팍팍 쓰고 앉아 있는 게 더 화가 났어.”

“내 표정이 중요해?”

“당신이 엄마 무시하는데 화 안나? 내가 장모님한테 그런 적 있어?”

“당신 정신 나갔구나. 지금 우리 큰일 났어. 어떻게 갚아. 미치겠어, 진짜….”

“난 당신 때문에 미치겠어. 엄마는 최선을 다한 거야. 어떻게 당신이 엄마한테 그럴 수가 있어?”

“그만하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당신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남편에게는 오직 어머니뿐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과연 아내의 자리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이미 밀려나버린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 그녀는 비참해졌다.

그녀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독특한 관계를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난도 퍼즐조각을 맞추는 사람처럼 그녀는 신중해보였다.

남편의 아버지는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젊은 날부터 고생이 많았다.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남편은 하교하면 집이 아닌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바빴다. 어머니가 아들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식당 TV를 보다가, 숙제를 하다가, 혼자 놀다가 잠들었다. 밤늦은 시간 식당 일이 끝나면 어머니의 등에 엎혀 집으로 왔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남달랐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머니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면서 그가 여유 있게 생각하자고 했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남편보다 네 살이나 많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일정에 맞춰 두 사람은 결혼했다.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독립적으로 성장했다. 부모님은 따뜻한 가정환경을 만들어주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다. 하나 있는 동생은 여섯 살이나 어렸다. 부모님이 일이 바빠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서 그녀가 동생을 돌봐야 했다.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 한 번 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는 날, 그녀는 부모님에게 편지를 썼다. 대학 등록금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는 과외를 하면서 돈을 벌고, 성적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을 마련했다. 정신없이 사느라 미팅 한 번,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20대가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에게 남은 것은 서른이 넘은 나이, 그리고 통장 하나가 전부였다. 인생 허무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알아서 하면 될 일이었다.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러니까 만약에 병원에 제가 먼저 도착했고, 어머니가 병원으로 오고 계시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 것 같으냐고 물으신 거죠? 반대 상황이네요. 아… 잘 모르겠어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아마 남편은 제게 집에 가라고 했겠죠. 서로 불편하다고.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더 비참해지네요. 남편은 항상 어머니가 먼저라고 생각하니까요. 분명히 제게 집에 가라고 했을 거예요.”

병원에서 퇴원한 날, 남편은 아내에게 오지 않고, 시댁으로 갔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녀가 수십 번 전화한 끝에 시어머니와 통화가 되었다. 아들 몸이 불편해서 이것저것 챙겨줘야 할 것이 많으니 몸이 다 회복되면 집에 보내겠다고.

다음 날, 저녁 늦게 남편이 보낸 문자를 받았다. 평소와 다르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일주일 내로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왜 존댓말을 사용했을까?’

그녀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남편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오면 담판을 짓고 싶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여러 문장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정리된 생각을 종이에 적었다. 종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예스 아니면 노 둘 중 하나, 그의 대답에 따라 그녀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그 종이 위에 문장은 간단했다.

“나를 선택하든지, 엄마를 선택하든지 둘 중 하나야.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어. 지금 당장 결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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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마음이 조급하다. 자신의 관점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싶어한다. 남편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면 그는 아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질문 자체를 회피하거나 어머니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둘 중 무엇을 선택하든 아내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이혼하지 않은 채 결혼 생활을 유지하게 된다면 아내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남은 결혼 생활은 지옥이 된다. 아내보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남편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급하게 남편을 밀어붙여 얻는 결과는 결국 두 사람을 파괴한다. 남은 인생이 달린 문제다. 조급할수록 천천히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결혼 생활 10개월, 너무 짧다.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부족하다. 연애 시작하고 결혼식을 올리기까지는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결혼 후에는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던 관심이 보다 넓게 확대된다. 원가족에 대한 영향력을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다. 결혼 전에도 두 사람은 양가 부모님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결혼 이후에 체감하는 원가족의 영향력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다.

남편의 어린 시절을 보라.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10개월이 아니라 10년이 필요하지 모른다. 남편이 올바른 길을 찾는 동안, 아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아내가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남편에게 어머니와 아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양쪽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그를 이해하자. 남편이 아내에게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이유는 절망감 때문일지 모른다. 어머니를 바꿀 수 없다는 절망감, 그래서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못한 채 아내에게 희망을 거는 것이다.

아내 쪽에서 노력해주면 무언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옳지 못한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없기에 아내를 몰아세우게 된다. 그녀의 반박이 심해지면 남편은 자리를 잃고 방황한다. 어머니와 아내,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관망한다. 관중으로 전락한 채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두 사람을 동시에 떠나버릴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고 후회 하는 남편을 적지 않게 보아왔다. 모두가 파괴되는 불행한 일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일 수 없다. 10개월은 너무 짧다. 더 살아봐야 한다. 남편의 진심을 알고 나서 결정 내려도 늦지 않다.

아내 역시 자신만의 관점으로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것을 바꾸기 어렵다. 그녀의 부모님과 시부모님은 다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뿐이다.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풀리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부모님을 바꿀 수 있는 며느리는 하루아침에 북핵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협상의 달인일 것이다.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시부모님은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 달리 방법이 없다. 그들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아내는 절망의 벽을 향해 돌진하는 버스에 올라탄 것과 같다.

그녀가 변화시켜야 하는 사람은 시부모님이 아닌 남편이다. 그는 충분히 변화될 수 있다. 그의 정체성이 확실하면 문제가 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내와 시어머니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때, 남편은 자신이 협상의 달인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도,  아내도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각이다. 중재하려고 하면 더 꼬인다.

남편은 협상가가 아니라 상담사가 되어야 한다. 아내가 화가 나서 자신의 어머니를 비난하고 일어난 일에 대해 불평하더라도 그녀의 감정이 풀릴 때까지 중립적인 자세로 상담을 잘 해줘야 한다.

솔직히 말해보자. 남편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모님을 아내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지나친 욕심이다. “나는 못하더라도 당신은 해야 한다”라는 신념은 아내를 절망의 벽으로 향하는 버스에 태운다. 아내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대상이 다른 사람일 때, 남편은 비교적 마음에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부모일 때는 마음의 여유는 사라진다. 아내는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중이다. 남편이 협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렇구나, 그래서 힘들었겠구나”라고 말해주면 된다. 상담을 잘해주라는 뜻이다.

협상은 아내가 시어머니와 알아서 할 일이다. 아내가 손에 쥔 카드가 없으면 협상이 불가능하겠지만 남편이 상담을 잘 해준 아내는 손에 쥔 카드가 있다. “남편 사랑”이라는 카드다. 그것을 가진 아내는 시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에 휘둘리지 않는 내공을 갖는다.

남편 마음속에 빛이 들어가지 않은 영역이 있다. 숨겨진 방이다. 문 앞에 “어머니”라고 쓰인 팻말이 있다. 창문 없는 그 방에 노출이 필요하다. 일단 힘껏 열어라. 그래도 힘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남편을 설득해서 가까운 상담센터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마저 어렵다면 부부가 함께 모이는 건강한 모임에 나가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다른 부부가 어떻게 사는지 공유하고, 그 모임에서 먼저 고생한 인생 선배에게 조언을 듣는 것도 유익하다.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서투른 사람이다. 익숙해지면 된다. 조금 더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