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였을 때, 사람들이 무서웠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낯선 환경과 어른 남자가 무서웠다. 앞니가 뒤틀려 발음까지 샜다. 앞니가 보일까 싶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른들이 보기에 나는 말없이 조용한 아이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조금 밝아졌다. 낯선 환경이 익숙해지면, 안정감을 느꼈다. 몇몇 친구들과 친해졌다. 나로 인해 다른 친구들이 웃는 것이 좋았다.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집에서는 우울했던 내가, 학교만 가면 밝은 아이가 된 것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지만,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익숙한 교실 안에서는 친구들과 편안하게 지냈지만, 교실 밖을 나가면 마음이 긴장되고 불안했다. 특히, 여학생이 있는 곳을 지나는 것이 끔찍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수 백 명의 학생들이 우르르 달려와 한꺼번에 식사를 했다. 커다란 식당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절반씩 따로 앉아 식사를 했다. 반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까지는 문제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가 문제였다.

    퇴식구가 여학생들이 식사하는 곳과 가까웠다. 수많은 여학생을 통과해야 퇴식구로 갈 수 있었다. 퇴식구로 가는 길이 내게는 고통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식판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가렸다.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한 번은 망신을 당했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려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걷다가 기둥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식판이 뒤집어지면서, 남은 반찬과 된장국을 뒤집어썼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된장국을 많이 남겼다.

    여학생들이 가득 앉아 식사하는 한복판에서 우당탕탕 식판을 떨어뜨렸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식판에 떨어진 반찬을 주워 담았다. 창피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쏜살같이 식당을 빠져나왔다.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 외모가 싫었다. 낯선 사람과 눈을 마주하는 것은 끔찍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실제적인 문제와 마주했다. 나중에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새 학기 수련회 강사로 유명한 선교사님이 오셨다. 학생 모두가 은혜를 받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감동적인 설교를 들었다. 내 안에 무언가 꿈틀거렸다. 이대로 안되겠다 싶었다. 그날 당장 학교 서점에 가서 사영리 소책자를 샀다.

    설교는 둘째치고, 사람들 앞에서 사영리라도 제대로 한 번 전해보고 싶었다. 복음을 전하고 싶어 신학교에 왔는데,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말은 내가 신학교를 졸업해도, 앞으로 목사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앞으로 절대로 내 문제를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계획을 세웠다. 사영리를 완전히 외운 다음에, 지하철 한가운데 서서 제대로 전해보겠다고 결심했다. 머릿속으로 상상만해도 식은 땀이 날 정도로 끔찍했지만, 나는 물러설 수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어디를 가든, 사영리 소책자를 들고 다녔다. 한 달 내내 열심히 외웠다. 안 보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 다 외웠다 싶었을 때부터,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그만 둘까 여러 번 생각했다.

    나는 억지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 올라타서 통로 한가운데 서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쳤다. “셋!” 하는 순간에 큰 소리로 사영리를 전할 작정이었다.

    마음속으로 “셋!”하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입술은 붙어버렸다. 극심한 공포가 몰려왔다. 눈앞이 빙빙 돌았다. 그대로 땅에 주저앉을 뻔했다.

    다리를 후들거리며 옆 칸으로 도망쳤다. 옆 칸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시도했다. 역시나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옆 칸으로, 또 다시 옆 칸으로 도망쳤다. 그러다, 마지막 칸에서 벽을 만났다.

    지하철 첫 칸부터 마지막 칸에 도착할 때까지, 공포에 짓눌려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었는데 뭐가 힘들었는지, 땀으로 옷이 젖었다. 한심한 노릇이었다.

    패배감으로 터벅터벅 지하철에서 내렸다. 포기할 수 없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시작한 일이니 끝을 보고 싶었다. 한 달 동안 매일 한 시간씩 지하철을 타기로 결심했다.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한 달이 지나도록,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감은 깊어졌다. 겁먹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내리고, 옆 칸으로 옮겨가다가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아저씨와 마주쳤다.

    물건을 파는 아저씨는 통로 한가운데 두 발로 서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은 제가 만득이 인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거 보세요. 손으로 잡아당기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합니다.”

    만득이 인형은 작은 손 풍선으로 만든 장난감이다. 손 풍선에 밀가루 반죽을 넣은 탓에 하루만 가지고 놀아도 굳어져 버려 못쓰게 된다. 단 돈 천 원짜리 장난감을 세상에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이라고 소개하며 팔았다. 그 당당함에 사람들은 지갑을 열어 만득이 인형을 샀다.

    부끄러웠다. 내가 전하려는 복음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이었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고귀한 복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창밖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났다.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비참한 심정으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나는 다음날, 그 다음날도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두 번 다시 비참한 심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나는 패배자였고, 머저리였다.

    비참한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너덜너덜해진 사영리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교회에서 맡겨준 일에 열심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청년부 사역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지하철 막차를 탔다. 피곤한 몸을 의자에 기대고 잠들려 했다. 눈을 감는데, 번뜩 생각이 떠올랐다.

 

    “이때다. 바로 지금이다!”

 

    지하철을 둘러보니, 술 취한 아저씨 한 사람만 보였다. 긴 의자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아저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곯아떨어져 반응하지 않았다. 통로 한가운데 서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동안 외우고 연습했던 사영리를 줄줄이 말했다. 듣는 사람 은 없었지만, 속이 시원했다. 가슴이 뻥 뚫렸다. 이대로 멈출 수 없었다. 옆 칸으로 옮겨갔다. 옆 칸의 상황 역시 다르지 않았다. 술에 취한 남자 셋이 의자에 기대 졸고 있었다.

    나는 통로 한가운데 서서, 있는 힘을 다해 사영리를 전했다.  옆 칸으로 다시 옆 칸으로 옮겨갔다. 마지막 칸에서 벽을 만났다. 환희와 희열에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벽에 손바닥을 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말았다. 아무도 듣는 사람 없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짓누르던 절망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제대로 도전하고 싶었다.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주말에 지하철에 올라탔다. 막상 주말에 지하철에 올라탄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예상 보다 많았다. 통로를 지나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빼곡했다.

 

    ‘그만두자. 여기서는 못 한다.’

 

    포기했다. ‘다음 역에서 조용히 내리자’, 생각하고 창밖을 바라보는데, 또 다른 생각이 찾아왔다.   

 

    ‘여기서 그만두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다.’

 

    나는 몸을 돌려 통로를 향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도저히 사람들을 쳐다볼 수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듯 말했다.

 

    “여러분, 저는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제 이름은 김유비입니다. 총신대학교에 다니는 신학생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대인공포증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목사가 되려고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한 마디도 못하는 제가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자책하고 괴로워하다 용기를 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주십시오. 제 이야기를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신다면, 여러분은 저의 평생에 은인이십니다. 그럼, 용기를 내서 말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외우고 연습했던 사영리를 전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울먹이듯 말했지만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나는 사람들의 무관심마저 감사했다. 나를 비웃거나 조롱하는 사람과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눈을 감고 말할 정도였다. 멱살은 잡히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통로를 지나 옆 칸으로 갔다.

    다음 칸에서 눈을 뜨고 말했다. 그다음 칸에서는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꽁꽁 얼었던 몸이 녹아내린 듯 했다. 그날 얼어붙은 몸이 녹지 않았다면, 나는 설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그들과 눈을 마주하고 말을 하게 된 것은 기적이었다.

    나는 결함 많은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내 안에 고장난 기능으로 고통받는다. 상처 입은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내 안에 결함을 마주한다. 이대로 계속할 수 있을까 수시로 고민한다. 남들에게는 사소하고 당연한 일이 내게는 엄청난 도전으로 느껴진다.

    내 의지로 시작했다면 진작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상처 입은 한 사람이 온전히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믿는 진실이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싶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 부끄러운 나 자신을 사람들 앞에 세운다.

 

나는 내 인생이 부끄럽지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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