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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1-2

십사 년이 지나서,

나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갔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간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거기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따로 만나서

내가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전에 한 일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돌봄의 말씀

상담실 안에서 목사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교회 권위자에 상처받고

교회를 떠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해도

교회는 싫다는 사람을 만나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머리를 숙여 용서를 구하면서,

지난날 내가 상처 준 사람을 떠올립니다.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람들은 오해합니다.

직분이 권위라고 생각합니다.

오해하면 상처받습니다.

 

직분은 기능입니다.

직분이 권위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권위는 복음에서 나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와 직분자를 존중하면 됩니다.

복종할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복종하면,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복음이 최종적인 권위를 갖습니다.

지도자의 말과 행동이 복음과 일치하면

마땅히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말과 행동이

복음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의 명령이 아니라

복음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십사 년이 지나서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예루살렘은 사도들의 본부였습니다.

사도들과 만남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복음을 설명합니다.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도 중에 누구 하나라도 반대했다면

바울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14년 동안 목숨을 걸고 전한 복음이

물거품이 될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사도들은 바울의 복음을 인정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과 사도들의 복음은

똑같은 복음이었습니다.

 

바울이 사도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순종한 것입니다.

 

사도들의 동의가 필요했다면,

회심 후 14년 뒤가 아니라

회심 후 즉시 찾아갔어야 합니다.

인정받고 시작하는 게 편했을 테니까요.

 

사도들의 동의가 필요 없음에도

바울은 사도들에게 복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경청했습니다.

 

바울은 사도의 권위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권위에 순종했습니다.

사도들 역시 복음의 권위에 순종했습니다.

 

제아무리 사도라도 복음에 어긋나면

바울은 참지 못합니다.

베드로가 복음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바울은 그를 거침없이 비판합니다.

 

지도자에게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길을 잃습니다.

지도자에 대한 존중은

그들이 복음에 순종할 때만 유효한 것입니다.

 

지도자라면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복음을 무시하는 순간,

사람들도 우리를 무시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 의견을 무시할 때

기분 나쁠 필요 없습니다.

나 좋아서 모인 사람들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인 사람입니다.

 

복음적이고 더욱 복음적이면,

복음적인 사람들이 따라줄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안전합니다.

 

사람들이 반대하면 내 뜻은 막힙니다.

그러나, 걱정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막힘없이 진행됩니다.

돌봄의 말씀

갈라디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