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은아가 뭐라고 한 거야?” 

 

미주가 남편에게 물었다. 

 

“뭘 뭐래? 검정고시 일주일 남아서 긴장되니까, 은아가 기도해달라고 했어.” 

 

미주의 표정이 좋지 않자, 주혁이 미주에게 되물었다. 

 

“왜? 기분 나빴어?”

 

“기분 나쁠 게 뭐가 있어. 목사가 기도해주는 거 당연하지.”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말하고 표정 하고 다르잖아.” 

 

“내가 부탁 하나 할까?”

 

“뭔데?” 

 

“기도는 보이는 데서 해도 되는 거잖아. 굳이 그 좁은 방에 기어들어갈 필요는 없어.”

 

“기어 들어가?”

 

“둘이 문 닫고 방에 들어가는 게 불편하다는 말이야.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아니, 은아가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어떡해?” 

 

“몰라, 나는 기분 나빠. 은아가 당신을 쳐다보는 눈빛도 그렇고, 당신 눈빛도 마찬가지고.” 

 

“살다 살다 참 별말을 다 듣네. 당신 이러는 거 유치하지 않아? 그냥 고등부 학생이야.” 

 

“나도 알아. 그러니까, 신경 쓰이게 하지 말라고.” 

 

“당신이 신경 쓰지 마.” 

 

“나 지금 말장난하는 거 아니야. 걔가 하고 다니는 것 좀 봐. 나보다 성숙해.” 

 

“그만하자. 나 이러다 폭발하겠어. 사람을 뭘로 보고.” 

 

“내 말은 듣기 싫고, 은아 말은 귀에 쏙쏙 들어오나 봐?”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잖아.” 

 

주혁은 숟가락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쿵 하고 문을 닫는 소리가 미주의 고막을 후려쳤다. 

 

미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에 놓인 그릇을 싱크대에 옮겨 담았다.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이 고스란히 버려졌다. 

 

#

 

“처음에는 ‘내가 너무 민감한가?’ 그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은아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어요. ‘내 판단이 옳았구나’ 확신을 가진 건 한참 뒤였어요.”

 

미주는 차분하게 말했다.  

 

 

“나 오늘 늦게 들어가.” 전화기 너머로 주혁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왜 무슨 일 있어?” 미주가 물었다. 

 

“오늘 수련회 답사야. 주말이라 고속도로 많이 막힐 거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알겠어. 조심해서 다녀와.” 

 

주혁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미주는 불안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미주는 주혁의 서재실로 성큼성큼 들어가, 지난주 고등부 주보를 살폈다. 수련회 일정과 장소가 적혀 있었다. 

 

미주는 소파에 걸 터 앉아 손톱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니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게 차라리 나아.’ 서로 다른 생각들이 미주를 덮쳤다. 미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직접 가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두어 시간 만에 수련회 장소에 도착했다. 경비실에 들러, 주혁의 자동차 종류와 색상을 설명했다. 경비는 그런 차가 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에 미주는 안심했다. 

 

구석진 곳에 차를 세우고, 의자 시트를 눕혔다. 멀리서 남편이 오는 것을 살펴볼 작정이었다. 

 

그렇게 밤이 되었다. 

 

미주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주차장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미주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잘 도착했어?” 

 

곧바로 주혁에게 답장이 왔다. 

 

“지금 다시 올라가는 길이야. 길이 너무 막혀서 새벽쯤에 도착할 것 같아.” 

 

주혁의 문자를 받고, 미주는 황급히 차에서 내려 경비실을 향해 뛰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경비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검은색 카니발 차량 들어온 적 있나요?” 

 

경비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아니, 아직도 여기 계신 거예요?” 

 

“네, 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요. 검은색 카니발 차량 들어온 적 없다는 거죠?” 

 

“없었다니까요. 오늘 차가 딱 세 대만 들어왔는데, 여기 공사하는 차량이에요.”

 

“알겠어요.”

 

미주는 다시 주혁에게 문자를 보냈다. 

 

“장난해?”

 

주혁이 답장을 했다. 

 

“뭐가?”

 

미주는 다시 차에 몸을 실었다. 시동을 걸고,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미주에게 답장이 없자, 주혁은 전화를 걸었다. 

 

“당신 왜 그래?”

 

“지금 어디야?” 

 

“말했잖아. 수련회 답사 다녀오는 길이라고. 길도 막혀서 짜증 나는데, 왜 자꾸 그래?” 

 

미주는 참을 수 없었다. 

 

“길이 막히기는 뭘 막혀? 지금 시속 160이야. 너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어?” 

 

주혁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나 지금 미행한 거야?”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이나 해. 너 지금 은아랑 같이 있지?” 

 

“아, 난 또 뭐라고. 또 그 소리야?” 

 

“묻는 말에만 대답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진짜 미쳤나 봐. 전화 끊어!”

 

주혁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미주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목사님, 저 은아인데요.” 

 

주혁의 전화기 너머로 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은아야. 웬일이야?” 

 

“목사님 혹시 이번 주 주말에 시간 되세요?” 

 

“이번 주 주말? 글쎄…. 무슨 일 있어?” 

 

“다름이 아니라요. 요즘 공부가 안돼서 너무 답답해요. 바람도 쐴 겸, 제가 가고 싶은 대학에 한 번 가보려고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목사님.”

 

“응.” 

 

“혹시 시간 되시면 같이 가주실 수 있으세요?” 

 

주혁은 당황했다. 

 

“그건 생각을 조금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주말에 목사님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 그래요…. 그러면, 목사님 시간 되시는 날 같이 가요. 그래 주실 수 있죠?” 

 

주혁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럼.” 

 

반대편에서 은아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화를 끊고 주혁은 생각에 잠겼다. 

 

옳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주혁은 은아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은아는 결핍이 있는 아이에요. 저도 처음에는 은아가 불쌍해서 잘 챙겼거든요. 이렇게 결론이 날지는 꿈에도 몰랐어요.

 

은아는 선교사님 자녀에요. 어릴 때부터 마음고생을 했겠죠. 현지에서 적응을 못했어요. 은아 부모님이 고민이 많았겠죠. 결국, 한국에 있는 친구 목사님 가정에 은아를 맡겼어요. 

 

그 친구 목사님이 저희가 모시는 담임 목사님이세요. 제 남편은 그 교회 부목사인 거죠. 남편이 고등부를 맡은 시점에 은아가 온 거예요. 

 

남편이 은아를 데려다가 저녁 한 번 먹이자고 말하길래 그러자고 했죠. 저녁을 먹으면서 은아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남편과 제가 은아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어요. 

 

그때부터 남편이 은아에게 연민을 느낀 것 같아요. 은아와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잘 챙겼죠. 은아를 만나고 온 날이면, 저녁 늦게까지 은아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닌데, 시간이 갈수록 기분이 이상해지는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왜 하루 종일 은아 이야기야? 내 이야기는 안 들어줘?”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은데, ‘유치하게 내가 왜 그러지?’ 생각하고 말았죠. 자존심 상하잖아요. 그냥, ‘저러다 말겠지. 언제까지 저러겠어.’ 그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남편이 은아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슴에 뭐가 걸린 것처럼 답답했거든요. 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은 알아요. 남편도 결핍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남편이 은아에게 빠져버릴까 두려웠던 거죠.  

 

은아의 결핍과 남편의 결핍이 교묘하게 만나서, 이런 상황까지 온 것 같아요.”

 

“남편과 제가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은아와 저는 겹치는 게 많아요. 아마 남편은 스스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저에게서 느꼈던 감정을 은아에게도 느끼는 것 같아요. 남편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요.” 

 

미주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3교대로 돌아가는 고된 일은 미주의 삶을 갉아먹었다. 미주는 버텨야 했다. 미주의 월급은 미주의 독립이었다. 

 

스스로 돈을 벌면서, 지긋지긋한 집을 떠났다. 미주는 아버지가 싫었다. 폭력적인 아버지는 미주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손찌검을 했다. 

 

아버지의 맨손이 얼굴에 닿을 때, 미주는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매로 때리라”고 울부짖어도 소용없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자기감정에 충실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에 견디다 못한 미주는 맨발로 집을 뛰쳐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미주는 주머니에 담겨 있던 자동차 열쇠를 발견했다. 엄마의 부탁으로 저녁에 장을 보고 와서 미처 빼놓지 못한 열쇠였다. 

 

 미주는 가만히 운전석에 앉았다. 서러운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미주는 울다 지쳐 잠에 들었다.

 

퍽, 퍽, 퍽. 

 

미주를 깨운 것은 야구방망이었다. 아버지는 술기운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미주를 찾아다닌 것이다. 차 안에서 자고 있던 미주를 발견한 아버지는, 야구방망이로 사정없이 유리창을 내리쳤다. 

 

자동차의 경보음이 울리고, 경비가 와서 말려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하면서, 미주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자동차 유리창이 사정없이 갈라졌다. 유리창에 새겨진 촘촘한 거미줄이 미주를 덮쳤다. 미주는 손가락 하나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미주는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집을 떠났다. 

 

“제가 일하는 병원하고 집하고 두 시간 넘는 거리였거든요. 병원 가까운 쪽에 원룸을 얻었어요. 당연히 교회도 옮겨야 했어요. 집 근처 교회를 가면, 아버지를 우연히라도 마주칠까 봐 두려웠거든요. 

 

남편을 만난 것도 그때쯤이에요. 새로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어요.”

 

#

주혁의 전화기에 은아의 이름이 새겨졌다. 주혁은 전화를 받아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그래. 은아야.” 

 

“목사님, 바쁘실 때 전화드렸죠? 

 

“아니 괜찮아. 말해.”

 

“혹시, 이번 주말에는 시간 되세요?”

 

같은 질문만 세 번째였다. 

 

“이번 주말은….”

 

“바쁘신 거죠?” 

 

은아는 풀이 죽었다.

 

“아니야…. 차라리 이번 주에 가자. 다음 주부터는 더 바빠질 것 같아.” 

 

“정말이에요, 목사님?” 

 

“그럼. 그런데, 은아야. 목사님이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요?”

 

“아무래도 은아하고 목사님만 단둘이 가면, 사람들한테 오해를 받을 것 같아. 다른 고등부 아이들도 그렇고. 혹시, 둘이 같이 가는 거 비밀로 해줄 수 있어?”

 

“그럼요, 목사님. 그렇게 할게요. 저도 비밀로 하고 싶었어요.” 

 

“그래, 고마워. 그럼 주말에 보자.”

 

“아, 잠깐요, 목사님.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저, 있잖아요. 목사님이 좋아요.” 

 

“고마워. 나도 그래.” 

 

“그게 아니라요, 목사님. 저 진심으로 목사님을 좋아한다고요.”

 

“….” 

 

 

“남편이 은아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알 것 같아요. 저와의 시작도 비슷했거든요.

 

교회를 옮기고 처음 간 수련회에서 간증을 한 적이 있어요. 하나님이 제게 은혜를 주셨거든요. 그동안 제게 있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말했어요. 

 

간증이 끝나고, 남편이 제게 다가왔어요. 많이 힘들었겠다면서 위로해주는데, 남편의 태도나 눈빛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다음부터 남편이 계속 연락을 했어요.  거절을 하다가, 결국 처음 만나 식사를 했죠. 그 자리에서 제가 그랬거든요. ‘지금 누구를 만날 상황이 아니다.’ 

 

남편은 괜찮데요. 자기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고. 솔직히 남편이 그렇게 말할 때, 좋았어요. 저도 사랑받고 싶었나 봐요. 

 

제가 거리를 두고 지냈는데도, 남편은 저를 기다리면서,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아껴줬어요. 결국, 제 마음도 열렸죠. 

 

남편은 섬세하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은아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만 사랑해줬어요. 귤 하나를 먹어도, 제 입에 먼저 넣어줄 정도로 다정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

 

주혁은 자정이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미주는 미쳐 날뛰고 싶었지만, 주혁의 말을 끝까지 들어볼 작정이었다. 

 

“지금 어디 있다 오는 건데? 수련회 답사 갔다 온다며? 은아랑 같이 있었지?”

 

“나중에 이야기하자. 지금은 상황이 복잡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주혁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당신 정말 미쳤어? 고등부 제자하고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그럼, 뭔데?”

 

“지금 말하기 싫다고! 나중이 말한다고 했잖아. 나중에, 나중에 말한다고!” 

 

“너 목사 아니야. 목회하지 마. 너 그럴 자격 없어. 당장 교회에 알리고, 너 같은 놈 두 번 다시 목회 못하게 할 거야.” 

 

“그래, 잘 됐다. 제발 그렇게 해줘! 누가 목회하고 싶다고 했어? 지금까지 억지로 한 거야. 사람들 눈치 보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해! 다른 일하면서, 나답게 살 거야. 알겠어?”

 

미주는 충격을 받았다. 주혁이 그러지 말라고 사정할 줄 알았던 것이다. 남편의 당당함에 미주는 무너졌다. 남편의 마음을 돌이키기에,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완전 돌았어. 경찰에 신고할 거야.” 

 

“은아 고3이야. 내년에 대학 가. 이제 몇 달 안 남았어. 나 이혼하고 싶어.” 

 

미주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그녀의 결혼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릴지 몰랐던 것이다. 

 

“은아가 성인이 되면, 정식으로 마음을 고백하겠다고 했어요. 

 

은아가 받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바보 같은 말도 했고요. 자기 마음을 받아줄 때까지 기다린데요. 언제든 곁에서 지켜줄 거라고….” 

 

미주는 남편이 은아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여주었다.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동안, 은아와 주고받은 연애편지였다. 

 

편지에는 도발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차 안에서 너를 안고 있는 동안, 절제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어. 너의 호흡, 너의 살결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거든. 하지만, 참을 거야. 은아가 성인이 될 때까지, 소중하게 지켜줄 거야. 우리 조금만 견디자.” 

 

주혁은 유치하다 못해, 파렴치했다. 피가 거꾸로 쏟는 듯했다. 미주가 편지를 찢어버리지 않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미주를 바라보았다. 미주는 내 눈빛에 대한 응답으로 차분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미치겠죠, 목사님? 저도 그랬어요.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는데, 한 편으로는 이 인간이 불쌍하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미주의 답변에 내 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주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도 이 인간이 미웠어요. 지금도 밉고요. 그런데, 문득 궁금하더라고요. 도대체 이 인간이 왜 이럴까? 그러다, 알게 되었죠. 시어머니가 남편을 이렇게 키웠어요.

 

남편은 목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시어머니의 강요로 목사가 된 거죠. 황당하게 들리시겠지만, 사실이에요.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살았어요. 착한 아들이었죠. 남편이 어머니 말에 순종한 덕분에, 전도사 때부터 어머니가 꼬박꼬박 생활비를 지원해줬어요. 

 

좋은 목사님 밑에서 잘 배우라고 지금  사역하는 교회를 소개해 준 거고요. 몇 년 후에는 교회도 개척시켜주신다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크게 건물은 못 지어줘도, 상가 하나는 얻어줄 수 있다고 명절마다 말씀하셨거든요.  

 

그럴 때마다 남편은 기가 죽었어요. 옆에서 지켜보는 저도 속이 상했죠. 그 사람도 그 사람 나름의 상처가 있을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제 잘못은 아니겠지만, 제 안에서도 이유를 찾아봤어요. 남편이 왜 그랬을까?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요. 남편이 힘들어하는 동안, 제가 남편 곁에 없었거든요. 

 

엄마가 많이 아팠어요. 엄마가 암 투병을 하는 동안 제가 엄마를 돌봤거든요. ‘엄마를 혼자 두고 나와서 엄마가 그런 몹쓸 병에 걸린 건 아닌가’, 하루에도 몇 번씩 무서웠어요. 엄마가 이대로 세상을 떠날까 봐서요. 

 

다행히 엄마는 회복되셨어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 곁에 있었네요. 남편이랑 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올 생각이었어요. 남편에게도 미안했고, 저도 많이 지쳐있었고….” 

 

미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조용히 우는 동안, 나는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눈을 찌르는 바람에, 자꾸 눈물이 났다. 

 

“그런데, 목사님. 제가 엄마가 아플 때, 엄마 옆에서 기도를 했거든요. 엄마 대신 제가 아파도 되니까, 엄마를 낫게 해달라고요. 그런 기도가 응답되나 봐요.

 

남편이 속 썩일 때, 몸이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종양이 발견된 거예요. 곧바로 수술을 받았어요. 

 

혼자 수술을 받고, 나오는데 서러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날 결심했어요. 남편도 보내주고, 엄마도 내려놓고, 이제 나를 위해 살고 싶다고….”

 

 

병원에서 돌아온 미주는, 차분한 목소리로 주혁에게 말했다. 

 

“이혼해 줄게.” 

 

“정말?”

 

주혁은 미주의 말을 반겼다. 

 

“응. 며칠 만 기다려 줘. 나도 내가 살 집은 구해야 하니까.”

 

“그럼, 물론이지.” 

 

“최대한 빨리 나갈 거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알겠어. 그동안 고마웠어, 미주야. 나 만나서 고생 많았고. 앞으로 잘 살아. 나도 잘 살게.” 

 

“우리 앞으로 이혼 관련해서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서로 말 걸지 말자.” 

 

“그러고 싶어?”

 

“응. 나 더 이상 당신하고 말하고 싶지 않아.” 

 

“알겠어, 그럼. 꼭 필요한 말은 문자로 할게.” 

 

“그렇게 해.” 

 

주혁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서재로 들어갔다. 은아와 통화하는 주혁의 목소리가 거실을 넘어, 미주가 있는 안방까지 크게 들렸다. 

 

“응, 허락받았어. 이혼해준대. 응, 그래. 진짜라니까. 그래, 확실해. 이따 저녁에 만나. 응…. 나도.” 

 

미주는 화장대 위에 놓인 액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미주와 주혁이 신혼 때 찍은 사진이었다. 

 

미주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액자에서 사진을 분리했다. 사진은 구겨져서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액자는 상자에 가지런히 담겼다. 미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옷가지들을 꺼냈다.

 

여행을 가듯,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목사님, 제가 한 달 정도 상담을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선교지에 잠시 다녀오고 싶거든요. 

 

제가 청년 때, 단기선교를 갔다가 은혜받은 곳이 있어요. 그곳에 계신 선교사님께서 저를 많이 아껴주셨거든요.

 

꼭 다시 가보고 싶었는데, 살다 보니까 기회가 없었어요. 이제 홀가분해졌으니까, 한 번 다녀오려고요. 도착하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생색내지 않았지만, 그녀가 선교를 떠난 한 달 동안, 그녀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그야말로 무능력했기 때문이다.

 

#

한 달이라는 시간은 의외로 짧았다. 그녀는 밝은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선교지에서 뜻하지 않은 은혜를 받았어요. 그곳에서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저는 깨달았어요. 내가 무너지는 동안, 예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놓치고 있었구나. 

 

아이들이 다른 언어로 해맑게 찬양을 하는데, 천사의 노랫소리를 듣는 것 같았어요. 내 안의 모든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랄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잠깐의 위기도 있었어요. 선교지에 있는 동안, 남편이 이혼소송과 관련해서 메신저로 말을 걸었는데, 나쁜 감정이 몰려오더라고요. 메신저 프로필이 커플링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거든요. 둘이 손을 잡고 커플링이 크게 보이게 사진을 찍었더라고요.

 

당분간은 힘들겠죠. 계속 화나고 혼자 울고. 마음 같아서는 두 사람이 끔찍한 벌이라도 받았으면 좋겠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아니겠죠.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건강을 주시고,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시면, 다시 선교지로 나가고 싶어요. 선교지에서 제가 확실히 깨달은 게 있거든요. 

 

“예수님은 정말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미주는 목이 메이는지, 잠시 감정을 추슬렀다.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상이라고 했다는 듯이,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남편도, 부모도,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지만, 예수님은 정말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미주는 오열했다. 

 

나는 손수건이 없었다. 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데로 내버려 두었다. 다행이었다. 미주는 손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려서 나를 볼 수 없었다. 

 

나는 미주를 바라보았다. 눈물로 굴절된 시선은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소파에 기대어 앉은 미주가 마치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듯했다. 

 

나는 안심했다. 상담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걱정하지 않았다.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마저 쏟아냈다. 

 

상담을 종결하고 내 일상을 살던 어느 날, 미주는 내게 메신저로 안부를 전했다. 그것은 마치 손으로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편지 같았다.  

 

“목사님, 저는 요즘 풍랑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있어요. 말 안 해도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두려움과 평안함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지금 잠시 외국에 나와 있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그동안 못 해본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면서, 계속 기도하고 있어요. 선교지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며 살고 싶은데, 그 꿈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지 모르겠어요. 생각나실 때, 함께 기도해주세요, 목사님.” 

 

그녀가 보낸 글의 분량만큼 나도 답장을 보냈다. 응원이나 격려였을 것이다. 답장의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여러 번 썼다 지웠던 문장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끝내 보내지 못한 문장이었다. 

 

“당신은 나를 치유했고, 내게 복음을 전했어요. 당신은 더 이상 내담자가 아니에요. 당신은 치유자이며, 동역자입니다.”

 

과도한 기대로 미주가 부담을 느낄까 두려웠다. 힘든데 씩씩한 척할까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보내지 못했다. 

 

내 가슴에 묻어둔 말은 진실이었다. 

 

미주는 치유자이며, 전도자이다. 

 

그녀는 몰라도, 주님은 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