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말해서 뭐하냐, 말해도 못 알아듣는데…, 이런 마음인지는 몰라도 같이 사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앉아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해도 결국 저 혼자 말하고 있어요. 아내는 그저 웃기만 해요. 그러다 기분이 거슬리면 표정이 싹 변합니다. ‘당신 생각 좀 들어보자’라고 하면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서 뭐하냐고 하죠.

       저는 정말 답답합니다. 퀴즈쇼에 출현해 문제를 맞추는 사람 같아요. 상자 밖에 나와 있는 꼬리만 보고 그 동물을 맞추는 거죠. 맞추기 쉬운 문제도 있지만, 맞추기 어려운 문제도 있어요.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아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뭔지 모르는 거죠.”

       남편은 결혼 생활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독립심이 강한 여자다. 남편이 없어도 못하는 일이 없다. 그가 전날 야근을 하고 잠든 주말 오전, 아내는 남편을 깨우지 않고 다섯 살, 세 살인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잠에서 깬 남편이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왜 깨우지 않았냐고 물으면 아내는 피곤해보여서 그랬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런 아내가 고마웠다.

       그러나 말 없는 아내에게 서운할 때가 많았다. 퇴근 길, 예상보다 늦게 오면 그녀의 표정이 밝지 않다. 미안하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녀는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한다. 예정보다 늦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남편은 아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 알 수가 없다. 그녀의 불편한 표정을 보는 것이 괴롭다.

       아내는 설명한 적이 없다. 그저 온도계를 보고 방의 온도를 알 수 있듯이 남편은 아내의 표정으로 그녀의 상태를 파악한다. 퀴즈쇼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말하기 싫을까요? 아마 남편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제 성장 과정이 독특했거든요. 어릴 때부터 가진 습관이랄까. 원래 말이 별로 없었어요.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잖아요. 실수는 또 다른 실수를 낳고. 남편이 뭘 요구하는지 알아요. 그런데 자꾸 표현하기 시작하면 그가 더 괴로워질 거예요.

       제가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하면 더 희생해야 할 거고요. 남편은 알아서 잘하고 있어요. 결혼 생활도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고요. 제가 무리한 것을 요구했다가 갈등이 일어나면 남편이 괴롭겠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요. 때로는 ‘귀찮아도 말할까?’ 하다가 ‘말 한다고 이 사람이 다 이해할까?’ 싶어서 마음을 접죠. 제가 살아온 방식대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은 한 순간에 바뀌지 않잖아요.”

       그녀는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을 버렸다. 그녀의 나이 일곱 살, 동생은 세 살이었다. 엄마가 고생하며 아이 둘을 키웠다. 함께 할 시간이 당연히 부족했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엄마는 충분히 힘들어 보였다.

       가장 친한 친구가 영어 과외를 받는다고 했다. 과외 선생님이 친구들을 그룹으로 묶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면서 그녀에게 함께 공부하자고 말했다. 그녀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했다. 과외 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엄마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말했다. 과외 받고 싶다고. 아침밥을 먹던 엄마의 표정이 굳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숨을 쉬면서 남은 밥을 싱크대에 버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엄마는 표정과 몸짓으로 ‘과외 보낼 형편이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후회했다. 말하지 않았다면, 엄마가 고통 받지 않았을 것이다. 괜한 말을 꺼내 엄마를 괴롭게 했다. 그 이후부터 그녀는 뭐든 혼자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다.

       “참, 웃긴 게 제가 말을 하지 않고 잘 들어주니까 제게 고민상담하는 친구가 많았어요. 저도 제 고민 때문에 힘들었는데, 친구들이 와서 고민을 털어놓더라고요. 친구들이 ‘넌 마음이 따뜻한 사람 같아. 네게 말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라고 했어요.

       저는 그게 좋은 줄 만 알았죠. 사회생활을 할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다른 직장 동료들이 회사, 상사를 원망하고 불평할 때, 저는 불평 한 마디 안 했어요. 저도 화나고 답답하고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지만 표현하지 않은 것뿐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윗분들이 좋게 보시더라고요.

       의도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제 실력을 보여줄 기회도 남들보다 많아졌고요. 모든 생각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때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해요. 남편이 답답하다고 하니까 고민은 고민이지만요….”

       남편은 사소한 것 하나도 가족과 함께 모여 대화하면서 공유하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남편 가족 모임에 가면 별 사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이 웃고 떠들고 좋아했다. 아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남편은 수다스런 사람이었다.

       남편은 가족과 대화하는 것이 행복한 삶의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대화하지 않으면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없고, 사소한 일에도 오해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에게 더 많은 대화를 요구했고, 아내는 그럴수록 위축되었다. 입을 닫고 침묵하는 것으로 그에게 항의했다. 아내가 출제하는 문제는 갈수록 어려워졌고, 그는 문제를 풀고 싶은 의욕을 잃었다.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라는 상식적인 명제를 되뇌어 보지만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났다.

#

        남편에게는 아내의 과거가 중요하지 않았다. 힘든 어린 시절을 자꾸 떠올리게 하는 것은 그녀에게 마음 아픈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살아온 삶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은 이유다. 그의 배려였다.

       아내는 어린 시절을 남편과 공유할 기회가 없었다. 원래 말이 없는 성향 탓에 묻지도 않은 것을 혼자 떠든다는 것은 그녀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가 살아온 삶을 처음 공유했을 때, 남편은 충격을 받았다.

 
 
 

.

미리보기는 여기까지...

.

멤버십에 가입하시고

모든 콘텐츠를 만나보세요

.

멤버십이라면 로그인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