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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마음이 상하는 날이 있어요. 주고받는 말에 마음이 불편해도, “괜찮아요”,라고 애써 말해요. 속마음은 그렇지 않거든요. 나도 모르게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돼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어져요. 크리스천은 꼭 착해야 하나요?

답변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착하면 좋지요. 하지만, 항상 착할 수만은 없어요. 무슨 말이야, 싶을 거예요. 사람을 파괴하는 생각 중에, “해야만 한다라는 당위적 사고가 있어요. 심해지면, 강박으로 발전해요. “나는 착해야만 해.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화를 내면 안돼. 사람들이 날 싫어할 거야.” 왜곡된 생각으로 고통받겠죠.

      나는 여기서 복음과 종교의 차이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종교에는 당위적 사고가 많아요. “해야만 한다, 해야만 한다의 반복이죠. 의무감으로 종교 생활을 하게 만들고,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요. 두려움으로 복종하게 만들죠. 두려워서 의무감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다면, 우리는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종교는 교묘하게 사람을 짓눌러요.

      복음은 은혜를 말해요. 하나님은 자격 없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어요. 일방적으로 사랑하셨고, 우리는 그 사랑을 거부할 수조차 없었어요. 폭포수 같은 은혜가 쏟아져 내렸고, 우리는 그 덕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예요. 은혜로 시작된 하나님과의 관계는 은혜로 지속되는 거예요. 그 누구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어요. 그 누구도 버림받을 수 없다는 말이죠. 우리는 그 감격으로 순종하는 거죠. 순종은 사랑받은 사람의 자발적인 반응입니다.

      변화된 삶은 사랑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사랑의 결과입니다. 사랑받은 사람의 반응이 곧 순종인 거예요. 순서가 중요합니다. 순서가 바뀌면, 우리는 파괴됩니다. 종교는 이 순서를 뒤바꿔 놓았죠. 종교는 우리를 교묘하게 속여요. 자격을 갖춰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기대에 못 미치면, 자격을 잃을 것이라고 말해요. 하루아침에 버림받을 수 있는 거예요. 복음은 종교와 완전히 다른 거예요. 복음은 진실이고, 종교는 거짓이죠.

      다시 착함에 대해서 말해볼게요. 먼저, 착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해요. “해야만 한다하면 좋다로 바꿔주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살면 돼요. 솔직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면서 사는 게 복음적인 삶이에요. 안 그런 척 포장하는 삶은 종교적 삶이에요. 단순하게 둘로 나눌 수 없겠지만, 일단 그래요.   

      용기 내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세요. 그렇다고,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라는 말은 아닌 거 아시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말하면, 상대방도 존중해줄 거예요.

      “나 사실, 아까 사람들 웃을 때, 같이 웃었지만 솔직히 기분 안 좋았어. 무시당하는 기분이었거든. 네가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건 알아. 그래서,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으려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과를 하겠지요. 문장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상대방이 반박할 틈이 없어요. 비난이 아니라 표현이니까요. 하지만, 세상에는 상식 없는 사람도 있겠죠.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 자체로 화를 내겠죠. 그런 사람과 마주하고 있다면, 조용히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하세요. 남은 시간 동안 상식적으로 대해주세요. 죄책감 느끼면서 억지 사랑은 하지 마세요. 그건 다시 종교로 돌아가는 거예요.

      용기가 필요했을 거예요. 솔직하게 고민을 말한 당신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이 기뻐하세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하게 보여주시기를 부탁할게요.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당당해지시고, 사람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당당해지세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착함이 아니라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부족한 답변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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