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아브라함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을 때, 나는 비웃었어요. 당연하지요. 나는 이미 100세였고, 아내 사라는 90세였습니다. 늙을 대로 늙은 두 사람이 어떻게 아들을 낳겠어요?

나는 말했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됐으니까, 지금 있는 아들에게나 복을 주세요. 종의 몸을 통해서 낳았지만, 그래도 내 자식입니다.”

믿음 없는 말이지요? 하나님을 조롱할 의도는 없었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무심결에 말해놓고, 긴장했지요.

믿음 없다고 혼내실 줄 알았거든요. 별 볼일 없는 믿음에 실망해서,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버리실까 걱정했지요.

하나님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습니다.

“그래, 네가 말한 그 아들에게도 복을 주겠다. 하지만, 그 아들이 내가 약속한 자녀는 아니다. 내년 이맘때 네가, 자녀를 낳을 것이다. 내가 약속한 아들이다.”

하나님은 믿음이 부족한 나를 이해하셨습니다. 은혜를 베푸셨지요. 나는 당황했습니다. 덤으로, 종의 몸에서 난 아들까지 축복해주셨으니까요.    

내 아내 사라도 믿음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남편에 그 아내였을까요?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속으로 비웃어버렸습니다.

“그렇면 좋게요? 남편과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어요?”

그 당시 나와 아내는 하나님을 잘 모르고, 우리의 처지를 비웃고 조롱했지요.

나도 내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내 현실이 너무나 슬프고 끔찍해서, 하나님이 바꾸실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지요.

“아무리 하나님이시라도, 내 상황은 못 바꾸신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믿음 없는 나에게 막상 아들을 주시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비웃던 사라는, 기쁨의 웃음이 터져버렸습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했지요.   

“하나님께서 내게 웃음을 주셨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도 나처럼 웃게 될 것이다.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있으리라고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그제서야, 나는 기억났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셨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입니다.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여라.”

내 아들의 이름은 처음부터 “이삭”이었어요. 이름의 뜻이 “웃음”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웃음”을 주신다고 했는데, 나는 믿지 못해서, 하나님을 비웃어 버렸습니다.

내가 훗날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린다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내 믿음으로 이룬 결과가 아닙니다. 믿음 없는 나에게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인생이 힘들 때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봅니다. 엄연한 현실 앞에서, 감히 꿈조차 꿀 수 없습니다. 형편과 처지를 탓하며, 자신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나는 부탁합니다. 당신의 믿음을 하찮게 여기지 마세요. 당신의 믿음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못 도와주실 것이라 단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입니다.

당신이 힘들어서 웃을 수 없다는 걸 압니다. 나도 그랬으니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셔서,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마저도 배려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나는 당신을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약속하신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세요.   

결국, 당신도 웃게 될 겁니다.   

<창세기 17:17>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웃으며, 마음으로 혼잣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백 살이나 먹은 사람이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오늘의 제안

3월 28일 토요일, 

<내가 나를 치유한다 – 입문반>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복음적 치유 성장 방법론을 공유하겠습니다.

수업에 대한 자세한 안내를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