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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극히 정상이야

부부갈등 우울증

 

“정상적인 삶을 원했어요. 제 인생이 이 정도로 망가질 줄은 몰랐죠.”

 

O는 마흔한 살, 결혼 12년 차, 두 딸의 아빠다. 그는 우울증,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아내와 사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결혼 초부터 아내의 정신적인 문제가 심각해보였다.

 

부부 싸움을 했던 어느 날,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가 울부짖으며 옷장 안에 있는 옷들을 꺼내 가위로 자르고 손으로 찢기 시작했다. 그가 그만하라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무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더니 가위로 위협했다.

 

그날 이후, 부부 싸움 할 때마다 이상한 행동을 했다. 신발을 모조리 꺼내 현관문으로 던진다든지, 다리미로 문을 부순다든지. 아내에게 정신질환이 생긴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남편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힘들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새벽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다. 12년 동안, 아내를 위해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목 놓아 우는 순간,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상처 많은 딸을 네게 맡겼으니 절대로 버리지 마라.’

 

그는 더욱 힘을 냈다.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사람들에게 아내의 상황을 알렸다. 아내에게 상담을 받자고 설득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아내의 반발은 갈수록 심해졌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내 문제를 말하고 동의 없이 상담을 신청했다. 아내는 분노했다.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그녀를 볼 때마다 남편은 속이 터졌다.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 상담실을 찾아왔다.

 

“제가 바라는 것은 기본적인 것들이에요. 아이가 아프면 엄마가 밥에 물이라도 말아 먹이고, 그 다음 약을 먹여야죠. 아내는 애가 아파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제가 뭐라도 좀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말합니다. ‘당신이 해. 당신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제가 ‘그건 당신이 좀 해줘야지’라고 해도 아내는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답답하니까 제가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을 사와서 먹여요. 이게 정상입니까?”

 

그는 반복적으로 아내의 문제 행동에 대해 말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저는 아내가 화장실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갑자기 딸이 배가 아프다는 거예요. 너무 급하다고 해서 아내에게 화장실 문을 열어달라고 했죠. 아내는 안 된다고 해요. 너무 화가 나서 아내에게 당장 문을 열라고 했는데도 안 열어줘요.

 

아이가 울려고 하기에 손잡이를 힘으로 비틀어 열었죠. 아내가 당황하더라고요. 제가 아내에게 막 뭐라고 했어요. 그것  하나 때문에 아내가 일주일 내내 말을 안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아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요.”

 

남편이 계속 말했다.

 

“명절에 제 어머니, 여동생, 아내와 어디 다녀올 일이 있었어요. 운전하는데 길이 막혀 제가 짜증이 난 상태였어요. 그런데 아내와 여동생이 별 것도 아닌 일로 예민하게 대화를 하는 거예요. 서로 싸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에게 그만하라고 했더니 저를 째려보더라고요. 여동생보다 아내가 나이가 더 많아요. 언니가 참는 게 당연하죠. 아내가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기에 그만하라고 했어요. 아내는 멈추지 않았죠. 시어머니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더라고요.

 

저를 막 비난하는 거예요. 참을 수가 없어서 갓길에 차를 대고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제발, 그만하라고!’ 아내는 혼자 막 울더니 차에서 내렸어요. 그러고는 반대편 도로 쪽으로 건너가더니 골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미칠 노릇이었죠.”

 

교회 모임에서 그가 마음을 열고 고민을 나누면, 교회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했다.

 

“고생이 많다. 아내를 위해 기도하자. 언젠가는 변화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이다.”

 

사람들이 위로해줬지만, 그는 위로받지 못했다. 도저히 버틸 수 없어 포기하고 싶은 생각 찾아올 때, 하나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상처 많은 딸을 네게 맡겼으니 절대로 버리지 마라.’

 

그는 생각했다. 힘들다고 아내와 이혼하면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이다. 아내만 변화된다면 그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는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아내가 상처 많은 사람이라 계속 문제가 일어난다고. 어린 시절, 그녀는 엄마에게 신체적 학대와 언어폭력을 당했다.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지 아내는 엄마 얼굴을 보지 않는다. 남편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내와 장모님의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남편은 아내가 장모님을 용서하지 않으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엄마를 용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던지는 거친 말들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만해! 너네 미친 거 아니야? 누구 닮아서 저러는 거야.”

 

아내 입에 습관처럼 달라붙은 말이다. 거친 말을 들을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녀는 자신이 상처 입은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남편 역시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가정 살림을 부수거나 어머니를 때렸다. 폭력적인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청소년기에 방황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했고, 그는 어머니를 따라 집을 나왔다.

 

남편은 자신 안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 상처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군대 생활을 포함한 다른 어떤 대인관계에서도 화를 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상처 많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 상처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이 있는 듯 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일주일 전에 부부 싸움을 하고 아내가 집을 나갔어요. 인도네시아로 가버렸어요. 거기에 아는 선교사님이 계시거든요. 지금 아이들이 방학 기간도 아닌데 혼자 가버리니까 어처구니가 없죠.

 

제가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어머니, 장모님이 교대로 아이들을 봐주고 계세요. 깊이 고민하고 있어요.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내 얼굴을 다시 보게 되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저는 아무리 힘들어도 버텼는데 아내는 힘들다고 아이들을 버려두고 다른 나라로 떠나버렸어요. 엄마가 아닌 거죠.

 

아내에게 연락이 오기는 했어요. 한 달 뒤에 다시 돌아올 거라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고 말하네요. 미쳐버릴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접니다.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어요.”

 

아내가 집 나가기 전날 밤, 남편은 이성을 잃었다. 아내가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게임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짜증이 났다. 남편은 아내에게 말했다.

 

“내일 새벽 출근해야 하니까, 아이들 재워주고 와.”

 

아내는 아직 잘 시간이 아니라고 말했다. 세탁기 타이머가 10분 정도 남았으니까 조금 있다 재운다고 했다. 그는 아내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벽에 던져버렸다. 아내도 지지 않았다. 남편의 노트북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노트북이 산산조각이 났다. 남편은 이성을 잃고 베란다에서 락스를 꺼내왔다. 그것을 방바닥에 뿌리면서 말했다.

 

“우리 같이 죽자. 더 이상 살아서 뭐해.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락스의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의 아내는 하얗게 질렸다. 다음날, 남편이 출근한 틈에 아내는 남편 곁을 떠나버렸다.

 

 

***

 

그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주장한다.

 

“나는 항상 옳다.”

 

아마  교회 사람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그의 아내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남편 입장에서 그의 아내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아내의 이상 행동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의 아내를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추측할 뿐이다. 남편의 유창한 말은 아내를 끔찍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아내의 이상 행동은, 사람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억눌렸을 때 나타는 행동이다. 손으로 옷을 찢거나, 다른 물건으로 문을 부수는 행동은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기 위한 생존수단이다.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을 혼자 끌어안고 있다가 내면이 여러 번 산산조각 난 아내는 수류탄을 밖으로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야 그녀도 사니까. 아내의 폭력적인 행동을 정당화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살핀 것이다.

 

남편과 대화하면 아내는 벼랑 끝에 몰린다. 남편은 싸울 때마다 아내의 감정을 무시하고 오직 이치에 맞는 말, 논리적인 대화만을 원한다. 말 잘하는 남편과 말싸움을 하면 아내는 불리하다. 승자는 언제나 남편이다.

 

그에게 조용히 묻고 싶다. 그렇게 말을 잘할 필요가 있을까? 또박또박 유창한 말을 하면서 아내를 짓밟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물러서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안다. 아내를 짓밟을 의도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당신의 의도는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남편은 반복해서 말했다.

 

“나는 정상적인 가정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문장이 하나 숨어 있다.

 

“나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이 문장을 앞의 두 문장 사이에 끼워 넣으면 그의 신념을 분명이 알 수 있다.

 

“나는 정상적인 가정을 원했습니다. 나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결혼생활을 파괴하고 있던 왜곡된 신념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신념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나는 정상적인 가정을 원했습니다. 나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정상이 아니거든요.”

 

남편은 무의식 중에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있다.

 

“내 아내는 정상이 아니에요. 당신도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고통 받고 있는지 아셔야 해요. 내가 비정상적인 여자와 결혼을 해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노력하는지. 저는 신앙의 힘과 강한 의지력으로 이혼하지 않고 버텨왔습니다. 당신도 이것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하나님도 인정하셨거든요. 상처 많은 아내를 위해 내가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남편은 정상이고, 아내는 비정상이라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다. 여기 등장하는 남편뿐만 아니라 많은 부부가 자신이 아닌 배우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근거 없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문제가 없어. 당신이 문제야.” 

“제가 왜 상담을 받아요? 저는 문제가 없어요.”

“왜 저한테 뭐라고 하세요? 저는 잘못이 없는데.”

“아무리 노력하면 뭐합니까? 저 사람은 노력하지 않는데.”

 

부부 상담은 개인 상담보다 효과가 낮은 경향이 있다. ‘비난할 대상’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결혼 전 남녀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의지를 가진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 어찌되었건 피해자는 자신이다. 그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안다. 상처를 인정하고 그것을 돌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부 상담은 다르다. 비난할 대상이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

 

“잘못한 사람은 바로 접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제게 있습니다. 저만 변화되면 우리 가정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한 번도 만난 본 적이 없다.

 

남편이 아내보다 월등히 성숙한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남편 말이 사실이라면, 아내가 아무리 상처 많은 사람이라도 결혼생활 12년 동안 치유되고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아내의 상처가 악화된 것처럼 보인다. 없던 상처도 생긴 것 같다. 그러므로 남편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남편은 아내보다 월등히 성숙한 사람이 아니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그 증거가 현재 둘의 상황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편의 폭력적인 성향이 아내를 두렵게 했고, 아내는 남편과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다른 나라로 떠나버렸다. 

 

하늘에서 내린 비는 낮은 곳에 고인다. 높은 곳에는 절대로 물이 고이지 않는 법이다. 참회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는 말이다. 참회하는 사람만이 성장할 수 있다. 참회를 모르는 사람에게 은혜가 임할 자리는 없다.

 

은혜가 사라진 기독교는 종교가 되어버린다.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껍데기가 되는 것이다. “자기 의로움을 주장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입증하라”라는 교리는 기독교에 없다.

 

‘상처 많은 딸을 네게 맡겼으니 절대로 버리지 마라.’

 

남편이 마음에 간직한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닐 것이다. 자기 의로움에서 비롯된 말이다. 자기 위선이 하나님 말씀으로 위장하는 순간, 행복은 더욱 멀어진다.

 

“차라리 속이 시원하네요.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주위 사람들은 제가 옳다고 말했죠. 이제 알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아내가 힘들어했는지. 맞아요. 제 잘못도 있어요.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어떻게 그 사람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말하겠어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의 말이 진심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적나라하게 지적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진심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가 의사에게 “다른 부위에도 암이 퍼졌다면 모조리 제거해주세요”라고 말할 때, 알겠다고 말하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수술 부위를 열었을 때, 암이 사방팔방 퍼져있으면 일단 덮는 것이 맞다. 여기저기 헤집다가 봉합도 못한 채 환자가 깨어난다면, 그것은 재앙이다. 보인다고 다 떼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한 번에 하나씩이다. 환자가 여러 번 수술대 위에 눕더라도 천천히 가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 악성 종양부터 떼어내자. 악성 종양은 ‘자기 우월감’이다. 빨리 떼어내지 않으면 ‘결혼’이라는 환자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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